추운 겨울의 나라 러시아에서 즐기는 전통 스파, 반야로 따뜻한 온기를 전해본다.
러시아 전통 스파, 반야
며칠 전 온라인 뉴스 기사 가운데, 이달부터 주 1회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항공편 운항을 시작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48시간 이내에 검사한 영문 PCR 음성 확인서만 있으면 한국인은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하다 하니 필자에겐 심리적으로 먼 나라였던 러시아를 불과 2시간 정도 비행으로 다녀올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번 시도해 볼까 잠깐이나마 마음이 동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귀국 후 2주간 격리가 부담스러워 쉽게 떠날 순 없고 랜선 여행으로 러시아의 전통 스파인 반야 체험을 떠나보려 한다.
러시아 반야(Russian Banya)는 러시아인들이 추운 겨울을 이겨 내기 위한 전통 스파이다. 장작을 때워 수증기를 가열하여 습도와 온도를 편안하게 유지하고 있는 통나무집 형태의 사우나인 반야는 근육통과 냉증을 완화하고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높이기 위한 치유의 공간이다.
러시아식 반야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뜨겁다고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핀란드 사우나보다 온도가 낮은 섭씨 60~90℃ 정도로 유지되며 습도는 50~90%로 찜질방에 가깝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작은 나무 오두막의 다차(시골 주택)에 가족을 위한 전용 반야를 가지고 있다.
일반 사우나와 반야의 다른 점은 분명하다. 반야에서는 베닉(Venik)이라고 하는 향기가 나는 참나무나 자작나무 또는 향나무나 유칼립투스 나무 잔가지를 다발로 엮어 물에 적셔서 부드럽게 만든 후 탈의한 몸을 핑크빛이 돌 때까지 두드린다. 각자 자신의 몸을 두드리지만 일행이 있는 경우 서로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두드려 주기도 한다.
마치 대중 목욕탕을 찾은 엄마와 딸이 서로 등을 밀어주는 것처럼. 따뜻한 사우나의 열로 인해 근육이 부드러워지고 모공이 열린 후에 베닉으로 자극을 주어 정맥 순환을 도와 노폐물을 배출하고 피부 각질도 떨어져 나가게 하는 원리이다.
뜨거운 증기 사우나 후에는 차가운 얼음물에 뛰어 드는 것이 반야의 전통 방식이다. 보통은 바닷가나 호숫가에 반야가 있어 통나무집 문을 열고 호수나 바닷물로 바로 뛰어들 수 있다. 만약 통나무집 주변에 눈이 쌓여 있으면 하얀 눈밭을 나체로 뒹굴기도 한다.
러시아인들은 인체를 뜨거운 온도에 노출시킨 후 체온이 높아진 상태에서 온도차가 큰 차가운 온도에 적응시키는 극단적인 방법이 혈류의 흐름을 급증시켜, 영양분을 순환시키고 근육의 노폐물을 배출하는 데 효과적이며 면역력도 강화된다고 믿고 있다.
또한 반야에는 거실 형태의 휴게실이 있어 사우나 도중 가족이나 친구들과 맛난 음식과 보드카를 마시며 친분을 나누는 기분 좋은 사교장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러시아인들은 정기적으로 반야를 찾아 모임을 한다. 일요일에 교회에 가기 전 주말 같은 시간대에 가족들과 만나 몸을 정화하고 친교를 쌓는 시간을 갖는다. 오늘날에도 러시아인들은 종종 반야에서 지인들과 모임을 하고 심지어 극진한 손님 접대를 위해 반야를 활용하기도 한다.
반야의 의학적 치료 효능에 관하여는 수 세기동안 연구가 있어 왔다. 제국 시대의 의사들도 반야와 이것의 건강상 이점에 대해 연구하였다. 특히 러시아 제국 후기의 콘스탄틴 카신과 에단 폴록은 공중 보건과 목욕에 관한 논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반야를 방문하는 것이 의사에게 가는 것보다 더 유익하다” 심지어 “이 의식이 약을 대체할 수 있다”고 하였다.
19세기 후반까지, 수십 명의 의학 연구자들이 건강과 위생을 위한 반야의 중요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만성 근육통, 이질, 치질, 인플루엔자, 폐기종, 비만, 류머티즘, 매독, 장티푸스 등의 질병에 반야의 사용법과 효능에 관하여 연구하고 기록하였다.
이것은 의사들이 반야를 방문함으로써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많은 질병들 가운데 일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시대의 많은 연구들이 반야가 그러한 질병을 성공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는 과학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었다. 제국 시대 이후 일부 학자들은 대중 반야들이 종종 더럽고, 과밀하며,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질병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공격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야 체험이 신체적·정신적 건강 증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무시되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러시아인들의 주간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건강과 피부에 좋은 반야 체험은 수세기동안 러시아인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으며 러시아를 찾는 외국인들에게도 반드시 체험해 보아야 할 러시아 전통 스파로 소개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반야 체험하기
반야는 4명 내외로 지인들끼리 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작은 것에서부터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 반야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사전에 사이즈를 선택하고 이용 시간을 정해서 예약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2시간 이용이 기본이며, 사이즈에 따라 다르겠지만 1인당 약 3,000루블(4만 8천원) 내외이다. 처음 대중 반야를 이용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전신 탈의
대중 사우나나 목욕탕처럼, 대중 반야에서는 모두 탈의해야 한다. 남녀가 구분되어 있어 우리나라의 대중탕과 같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소수가 이용하는 개인 반야는 수영복을 입는 곳도 있으니 예약시 확인이 필요하다. 현대식 반야는 냉탕이 실내에 함께 있는 곳이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 반야를 대여하더라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벌거벗은 채로 냉탕을 이용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두자.
가운이나 수건은 개인이 준비 또는 유료로 대여
반야 체험의 본질은 땀을 많이 흘리고 해독작용을 하는 것이므로 땀이 많이 난다. 따라서 타올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준비해서 가져가거나 추가 비용을 내고 대여해야 한다.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차다면 거실(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한다. 휴식 시에 체온 유지를 위해 가운이나 커다란 타올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 사전에 준비하거나 대여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베닉으로 맞기
재미있는 표현이지만 앞서 소개한 베닉(나무 다발)으로 모르는 사람이 내 등이나 어깨를 칠 수도 있다. 이것은 무뚝뚝한 러시아 사람들이 엄청난 친절과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것이므로 “괜찮아요”라고 웃으며 사양하거나, 나중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들이 사전에 “내가 두드려 줘도 되니?”라고 묻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베닉은 입장 시에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하거나 대여하며 샤워 후, 사우나에 들어가기 전에 뜨거운 물에 담가 두어 부드럽게 한 후 사용한다. 1인 1베닉 사용을 원칙으로 하므로 다른사람들과 공동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차 마시기
사우나의 더위를 참기 힘들거나 탈수 증상이 있다고 느껴질 때 상쾌한 물 한모금이나 차가운 맥주 한 캔이 간절하겠지만 ‘그렇게 하지마세요’라고 주의를 준다. 차가운 음료 섭취로 더 심한 어지럼증에 빠질 수 있으니 몸에 좋은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 따스한 허브차는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예방하고 종류에 따라 몸에 좋은 효능이 있으니 차를 마시기를 권한다.
펠트 모자 쓰기
반야에서는 펠트라고 하는 도토리 모양의 모자를 쓴다. 이것은 사우나 안의 뜨거운 온도로 인해 머리카락이 마르는 것을 예방하고 온·냉의 급격한 온도 차로 뇌 혈관이 자극 받는 것을 줄여 주기 위함이다. 멋내기 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펠트를 착용하기를 권한다.
긴장을 풀고 반야 즐기기
반야 체험은 편안하고 즐거운 경험이니 천천히 즐기면 된다. 처음 방문하는 곳에서 낯선 행위로 긴장이 되겠지만 잘 모르면 러시아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면 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반야는 편리하게 잘 차려져 있을 것이고 언제든 도움을 청할 안내인도 있을 것이다. 탈의실이나 반야 주변에 라운지룸(휴게실)이 있을 것이다.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차나 간식을 주문할 수 있다. 대부분의 반야에는 레스토랑도 함께 있다. 배가 부른 후에 반야 체험은 추천하지 않지만 반야 후에 러시아식 식사로 마무리하는 것은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