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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규의 행복학교]
[최경규의 행복학교]
불경기를 이기는 기술, 배려

모두가 어려워하는 때, 슬기롭게 힘든 시기를 보내기 위해 필요한 것, 다름 아닌 배려다. 남을 위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는 진리.

불경기를 이기는 기술, 배려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도 있고,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다. 생체 바이오리듬이 있듯, 우리의 삶에도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고 불리는 흐름의 높낮이가 있다. 소위 말하는 내공이 깊은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아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고통의 터널에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에게도 과연 이 말이 도움이 되는지 알 수는 없다.
코로나 때보다 더 지독한 불경기라는 자영업자들의 목소리가 세상을 도배하고 있다. IMF시절도 지금보다는 더 나았다는 말 또한 어렵지 않게 들어볼 수 있는 오늘, 때를 기다리기에는 지쳐가는 이들이 주위에 너무나 많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만이 남는 듯하다. 대한민국, 청소년과 노인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부끄러운 현실은 힘든 삶 그 일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그들에게 과연 무엇이 중요할까? 자본주의 시대, 안정적인 수입이 주된 해답인 것인가?
필자는 이러한 문제 발생이 비단 경제적 이유 때문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삶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 이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가 중요하다. 가족 간의 소통, 이웃 간의 정과 같은것이 행복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 핵가족 시대, 인터넷의 발달 등으로 인해 소통이 아닌 편리함을 위장한 불통의 시대가 되었고, 자기 위주의 삶에 길들여진 세상에 발맞추어 이웃사촌이란 말은 사라진 지 오래인 듯하다. 흔하게 듣는 층간소음 문제, 다툼이란 뉴스가 매일 나오는 걸 보면 우리의 인내심 역시 점차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그 어떤 것에도 충족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볼 때 삶의 안정성, 행복을 가지기 위한 노력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우리는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기적 행복
나 혼자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의 사고는 단기적이고 이기적 행복을 만들기에는 손색이 없다. 보이지 않기에 익명으로 SNS에 쉽게 악플을 달고, 자신의 행복에 조금이라도 침해가 된다 싶으면 바로 구청이나 경찰에 신고하는 모습을 볼 때 자칫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지속가능한 행복
행복한 삶을 위한 여러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 중, 오늘 소개하고 픈 내용은 바로 ‘배려’이다. 남을 위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는 진리. 쉽게 설명하기 위해 어느 선배의 이야기를 전해보려 한다.
고희(古稀- 나이 70)를 바라보는 그는 작은 공장을 경영하고 있다. 수십 년간, 시대 트렌드에 따라 사업 역시 호황일 때가 있었고, 불황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배려라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다. 노인들을 위한 무료 식사를 준비하고 작은 공연을 선물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도, 다른 기업 후원도 받지 않는다.
경기가 최악이라고 불리는 시간에도 그는 여전히 무료 밥차를 운영하였다. 뜨거운 여름날에도 음식 나르기에 분주하였고, 추운 겨울에는 국물을 옮기다 옷이 젖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항상 웃는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득도한 신선과 같다.
그를 볼 때마다 느끼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늘 얼굴에 미소가 그치지 않는다는 점. 주변 친구들과 비교하면 10년은 젊게 보인다. 그의 배려는 주위를 밝힐 뿐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도 젊게 만든 것이다. 그런 그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오늘이 힘들다고 내일도 힘든 법은 없어,
모든 건 다 지나가는 거야.
그러니 좋을 때는 소중히 그 시간을 즐기고,
힘들 때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하다 보면
때는 반드시 다시 오게 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수십 년의 배려에서 터득한 삶의 노하우, 행복하기 위한 어드바이스는 현대인들에게 충분한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 것 같다.
남을 위하는 배려는
어려운 시기, 좋을 때를 앞당길 수 있는 마력이 있다고
나는 풀이하고 믿는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징글벨을 울리며 산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부터, 눈이 오는 날 하늘을 보며 옛 추억을 떠올리는 어른까지 모두가 행복해지면 좋겠다. 내가 먼저라는 생각보다 남을 먼저 위하자고 조금이라도 생각할 때 배려는 시작되고,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난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불경기를 이기는 기술, 배려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도 있고,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다. 생체 바이오리듬이 있듯, 우리의 삶에도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고 불리는 흐름의 높낮이가 있다. 소위 말하는 내공이 깊은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아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고통의 터널에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에게도 과연 이 말이 도움이 되는지 알 수는 없다.
코로나 때보다 더 지독한 불경기라는 자영업자들의 목소리가 세상을 도배하고 있다. IMF시절도 지금보다는 더 나았다는 말 또한 어렵지 않게 들어볼 수 있는 오늘, 때를 기다리기에는 지쳐가는 이들이 주위에 너무나 많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만이 남는 듯하다. 대한민국, 청소년과 노인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부끄러운 현실은 힘든 삶 그 일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그들에게 과연 무엇이 중요할까? 자본주의 시대, 안정적인 수입이 주된 해답인 것인가?
필자는 이러한 문제 발생이 비단 경제적 이유 때문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삶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 이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가 중요하다. 가족 간의 소통, 이웃 간의 정과 같은것이 행복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 핵가족 시대, 인터넷의 발달 등으로 인해 소통이 아닌 편리함을 위장한 불통의 시대가 되었고, 자기 위주의 삶에 길들여진 세상에 발맞추어 이웃사촌이란 말은 사라진 지 오래인 듯하다. 흔하게 듣는 층간소음 문제, 다툼이란 뉴스가 매일 나오는 걸 보면 우리의 인내심 역시 점차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그 어떤 것에도 충족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볼 때 삶의 안정성, 행복을 가지기 위한 노력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우리는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기적 행복
나 혼자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의 사고는 단기적이고 이기적 행복을 만들기에는 손색이 없다. 보이지 않기에 익명으로 SNS에 쉽게 악플을 달고, 자신의 행복에 조금이라도 침해가 된다 싶으면 바로 구청이나 경찰에 신고하는 모습을 볼 때 자칫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지속가능한 행복
행복한 삶을 위한 여러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 중, 오늘 소개하고 픈 내용은 바로 ‘배려’이다. 남을 위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는 진리. 쉽게 설명하기 위해 어느 선배의 이야기를 전해보려 한다.
고희(古稀- 나이 70)를 바라보는 그는 작은 공장을 경영하고 있다. 수십 년간, 시대 트렌드에 따라 사업 역시 호황일 때가 있었고, 불황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배려라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다. 노인들을 위한 무료 식사를 준비하고 작은 공연을 선물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도, 다른 기업 후원도 받지 않는다.
경기가 최악이라고 불리는 시간에도 그는 여전히 무료 밥차를 운영하였다. 뜨거운 여름날에도 음식 나르기에 분주하였고, 추운 겨울에는 국물을 옮기다 옷이 젖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항상 웃는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득도한 신선과 같다.
그를 볼 때마다 느끼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늘 얼굴에 미소가 그치지 않는다는 점. 주변 친구들과 비교하면 10년은 젊게 보인다. 그의 배려는 주위를 밝힐 뿐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도 젊게 만든 것이다. 그런 그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오늘이 힘들다고 내일도 힘든 법은 없어,
모든 건 다 지나가는 거야.
그러니 좋을 때는 소중히 그 시간을 즐기고,
힘들 때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하다 보면
때는 반드시 다시 오게 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수십 년의 배려에서 터득한 삶의 노하우, 행복하기 위한 어드바이스는 현대인들에게 충분한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 것 같다.
남을 위하는 배려는
어려운 시기, 좋을 때를 앞당길 수 있는 마력이 있다고
나는 풀이하고 믿는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징글벨을 울리며 산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부터, 눈이 오는 날 하늘을 보며 옛 추억을 떠올리는 어른까지 모두가 행복해지면 좋겠다. 내가 먼저라는 생각보다 남을 먼저 위하자고 조금이라도 생각할 때 배려는 시작되고,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난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글
by 최경규
사진
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