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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규의 행복학교]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할 날이 온다면
세상을 잘 사는 비결 한 가지는 바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그 시간 속에 진심을 담아 실행하는 일이다. 이를 위한 진정한 비움이란 정말 소중한 것을 담기 위해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작업이다.
사랑이란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무엇일까? 흔히 사랑이 아니냐고 답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스트레스라고 한다.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깊어진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의 시대상이 반영된 단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인 사랑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된 때도 분명 있었을 테지만, 지난 한 달을 거슬러 기억해보아도 사랑한다는 말을 주위에서 들어 본 적이 그리 없었던 듯하다. 스트레스 받는다는 말은 하루에도 수없이 귓가를 스치며 들려 오는데도 말이다.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은 스트레스가 아니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면 나이에 따라 삶에서 비치는 색은 각기 다르다. 흔히 드라마에서 보는 로맨틱한 감정을 우리는 사랑이라 떠올릴지 모른다. 그래서 20-30대의 욕망적, 소유욕이 강한 것을 사랑이라 명명하며 우리의 삶에서 각인되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어감에도 아직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를 내 감정의 울타리를 쳐놓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선배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 어려운 이유가 뭔지 알아? 늘 변하기 때문이야. 마치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구름처럼 말이지, 환경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거든. 그래서 그걸 이겨내려면 인내와 희생이 필요해. 하지만 인스턴트 러브가 쉬운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 그리고 자기만족을 위한 감정을 사랑이라 표현하는 이도 있어. 하지만 그것은 타인을 내 마음에 가두려는 집착이고 강요이기 때문에 관계는 오래갈 수가 없어”
그렇다. 자기만족을 위한 감정은 이기적인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음식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재료가 바로 희생이지만, 그러한 만족만을 위한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으로 결핍되어 있다.
또 다른 선배는 이렇게 사랑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삶의 황혼기를 맞으면 사랑이 없는 것이냐고 물어볼 수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랑은 더 쉽게 다가오고 느낄 수 있어. 우리 집 앞 세탁소는 벌써 40년이 되어가. 부부가 함께 일했지만, 지금은 할아버지 혼자 일하기 때문에 일찍 문을 닫는 편이야. 저녁이면 아무리 손님이 와도 미안하다며 내일 오라고 하고, 할머니가 있는 집으로 가더라고. 치매 걸린 부인을 늘 웃으며 대하는 할아버지, 어떻게 그렇게 살갑게 대할 수 있는지 물은 적이 있지. 그분의 대답은 내 가슴에 늘 박혀있어”
“집사람은 이제 내가 누군지도 몰라요. 때로는 나를 때리기까지 하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나는 아프지 않아요. 심지어 멍이 든다고 해도 며칠 지나면 멍은 사라지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집사람을 기억할 수 없을 때가 올 겁니다. 그때는 서로를 몰라보겠지요. 그때가 언제인지 몰라요. 내년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내일일지도 말이지요. 그래서 후회 없이 사랑하려고 합니다. 살아보니 이제야 뭐가 중요한 것인지 좀 알 것 같아요. 내 나이 80에 말이지요”
진정한 사랑과 비움
갈수록 똑똑해지는 우리 현대인은 정작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마치 영원 속에 살아갈 것처럼 아등바등하고,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일인 양, 하루를 전투 속에서 살아가는 듯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믿고 대하는 세상 속에서 과연 우리는 현명하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중요한 사실은 바로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우리는 좋았던 과거만 기억하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가고, 정작 중요한 일은 내일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원 없이 사랑하고, 안아줄 수 있을 때 가슴이 터질 정도로 안아주어야 한다. 세상을 살면서 잘사는 비결 한 가지는 바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그 중요한 시간 속에 진심을 담아 실행하는 일. 그러면 아까운 시간 속에서 화낼 일도 가슴 아파할 일도 줄어들 것만 같다. 진정한 비움이란 아무것도 채우지 않기 위해 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소중한 것을 담기 위해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23년의 가을을 무슨 색으로 채울지는 바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스트레스로 물들 가을을 만들지, 아닐지 말이다. 나는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하려 한다. 정말 소중한 사랑을 내 삶에 채우기 위해 비움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 비우고 또 비우면 맑아지고 더 맑아져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더 잘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